김헌곤 목사의 한국교회 순교자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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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집단순교지(2)- 77인 최대 순교자를 배출한, 영광 염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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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NEWS 기자 작성일20-10-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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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유적연구회 김헌곤 목사가 <한국교회 순교자 열전>을 펴냈다.

이 책은 김헌곤 목사가 전국 집단 순교지 17군데를 답사하며 그간의 순교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임종헌, 주기철 목사 등 한국교회 초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까지 순교한 55인과 염산교회, 병촌교회 등 집단 순교지 17곳의 순교 역사를 담았다. 이에 본지는 순교역사를 연재하므로 순교정신으로 코로나시국의 예배회복과 부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전쟁 집단순교지(2): 77인 최대 순교자를 배출한, 영광 염산교회

  

한국전쟁 시 민간인 최대 피해지역은 호남이었다.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의하면 인민군과 공산군에 학살된 남한의 민간인 수는 6만 명에 이른다. 세분하면 전남에서 43,500명이 죽고, 그중에 영광군에서 21,200명에 달한다. 그리고 영광군 염산면에서는 15천여 명의 주민 가운데 30%5천 명이나 학살당했다. ‘집안의 씨를 말렸다는 가정이 많이 나올 정도로 학살은 아비규환(阿鼻叫喚)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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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영광 염산교회

1939년에 설립된 염산교회에 김방호 목사는 1950310일에 죽으면 죽으리라! ” 는 각오로 제3대 목사로 부임한다. 당시 염산교회는 1년 이상 목회자가 없는 상태로, 좌익 세력과 힘겨운 대립을 하고 있던 차였다. 석 달 후 시작된 한국전쟁에도 굴하지 않고 김 목사는 교인들에게 천국과 재림신앙을 심어 주는 데 노력하였다.

염산 교회에 전쟁의 환란이 몰려들자 김동근 장로와 김 장로의 큰 아들 김형호 집사(목포 상고 교사)는 목선을 준비하여 김방호 목사에게 피난을 권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어떻게 성도들을 놔두고 다른 곳으로 피하겠는가?” 하며 거절하였다. 김 목사와 염산교회에 재앙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723, 공산 당원들에게 예배당과 사택을 빼앗겼고 107, 예배당이 불에 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19501027, 결국 김방호 목사와 8식구(부인, 5남매, 손녀)가 한 아들만 남기고(김 익- 목회자로 헌신) 같은 날 순교했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김 목사가 창과 몽둥이에 맞아 먼저 쓰러졌다.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서도 그는 찬송을 읊조리며 영광된 순교자가 되었다. 칠산 바다의 거친 물결이 설도항 수문 앞에 넘실대는 가운데 잔인한 집단 처형은 계속되었다. 4~5kg의 돌을 목에 맨 사람들은 바닷물에 던져졌고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노병재 집사와 그의 가족과 일가 22명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찬송하면서 순교했다.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중에는, 젖먹이 동생을 업은 언니가 동생에게 울지 마, 우리는 지금 천국으로 가는 거야.” 라며 다독이기도 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목포성경학교 3학년생으로 장래가 촉망받던 기삼도 (23) 성도도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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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산교회의 순교탑 

염산교회의 1대 담임이었던 허 상 장로와 부인도 순교했다(1013). 봉덕산 골짜기로 끌려가 매를 맞고 죽창에 찔려 숨을 거두었는데 장로님은 끝까지 찬양을 드렸다고 전해진다. 염산교회 2대 담임이었고 1949년부터 순회 목사로 사역하던 원창권 목사도 부인(조이성)과 세 아들과 네 딸, 그리고 7개월 태아까지 열 식구가 1019일에 영광 밀재에서 순교하였는데 두 딸(원영은 사모, 원영이 권사)은 결혼해서, 아들은 군대에 입대해서 살아남았다고 섬 선교의 공로자요 총회장을 역임한 박요한 목사가 증언한다.

염산교회 교인들 3분의 277명이 순교한 것이다. 몽둥이로 맞아 죽고, 나머지는 목에 돌을 매달고 물이 들어오기 전에 칠산 앞바다에 들어갔다가 물이 들어올 때 모두 수장되었다. 그들은 찬송하며 순교하였다. 107일부터 3개월 기간에 순교하였다는 것은 피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피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것이다. 전쟁이 지난 후 32명의 시신은 교회 앞마당에 조성된 순교공원에 합장되어 있으며, 다른 지역에 안치되어 있던 김방호 목사와 허 상 장로의 묘소도 2014년에 이곳으로 옮겨와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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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태풍이 지나간 후 교회와 염산면은 폐허가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는 아픔을 곱씹기 싫어 많이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 중에 거룩한 그루터기가 있었다. 절대 절망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새벽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부르짖어 구했다. 이제 염산교회는 지역 사회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 크게 부흥되었다고 염산교회 임준석 담임목사는 눈물로 증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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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산교회 순교기념관에 전시된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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