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승 교수의 오순절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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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운동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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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NEWS 기자 작성일20-07-1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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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맨의 오순절운동의 성령 기원설은 스텐리 프로드샴(Stanley H. Frodsham)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영국에서 자라나 미국에 건너와 30년 동안 하나님의 성회의 기관지 The Pentecostal Evangel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프로드샴은 1926년에 20세기 오순절 운동의 이야기에 대한 표준적 작품으로 평가되어온따르는 표적으로(With Signs Following)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벧엘 성경학교에서 일어났던 오순절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그런데 그는 벧엘 성경학교 교장이었던 찰스 파함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포르드샴은 파함의 존재 자체를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바틀맨이 로스앤젤레스에서의 파함의 행적에 침묵했던 것보다 더 심한 것이었다. 포르드샴은 로스앤젤레스 오순절을 시무어로부터 시작했지만, 그곳에서 시무어는 창시자가 아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포르드샴은 아주사 집회의 증인의 말(아마도 바틀맨의 말), “하나님의 만지심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집회에 들어가자마자 성령께서 그 지도자이심을 깨닫는다를 인용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 산하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던 칼 브럼백(Carl Brumback)1961년에 오순절운동의 기원이 세속적 원인에 돌려져 온 것을 바로잡아 신적 원인에 올바로 돌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사가들이 오로지 천상적인 것(the heavenly)보다는 지상적인 것(the earthly)을 기반으로 부흥들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영적으로 다시 오심(the coming again, spiritually)이라는 신적 요소(the divine element)를 거의 무시한 채 그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또는 단지 종교적 문제들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 오순절 부흥의 기원과 성장의 원인도 세속적인 원인들(mundane causes)에 잘못 돌려져 왔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나름대로 그 경향을 바로잡아 오순절운동의 시작은 지상적 원인이 아닌 천상적인 제 일 원인”(the First Cause)의 작용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비록 브럼백이 오순절운동의 신적 원인에 집중했지만, 그는 인적 원인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순절적 부흥에 대한 지상적 상황들(conditions)의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오순절 운동의 발흥을 위한 배경을 제공했다는 상황들을 열거했다. 또한 그런 상황들 안에서 오순절운동을 이끌었던 찰스 파함(Charles F. Parham),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 등 인간 지도자들의 사역을 소개했다.

그러나 브럼백은 그런 인적 요인들을 소개한 후 눈을 돌려 진정한 오순절의 기원인 신적 요인에 주목한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오순절주의자들에게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Call No Man . . . Father)고 외쳤다. 1세기 오순절의 아버지를 발견하기 위해 사도들 너머를 보아야 하는 것처럼, 20세기 오순절의 아버지(the Father of twentieth-century Pentecost)를 찾기 위해서는 그저 인간을 바라보지 말고 그 너머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순절운동을 창시한 사람(a progenitor)이 없다는 것을 강력한 오순절 부흥이 직접적으로 성령의 특별한 부어주심에 의해 태어났다는 표시로 간주했다. 그에게 이 점이 한 사람에 의해 주도되어 탄생했던 다른 기독교적 집단들로부터 오순절운동을 구별시켜주는 것이었다.

브럼백은 파함과 시무어도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로 간주될 수 없다며, 성령이야말로 오순절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순절운동의 걸출한 지도자들로서 오순절의 기원으로 지칭되는 파함과 시무어도 스스로를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라고 자청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파함이 비록 자신을 오순절 운동의 지도자로 자청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오순절적 교단을 만들어 권위를 내세운 적이 없었다는 점,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다는 성경적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파함이 아닌, 그의 학생들이었다고 해석하며 그를 오순절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시무어도 역시 그의 사역의 시초에는 오순절의 창시자를 파함이라고 인정하고 파함이 펴냈던 사도신앙지의 이름을 그대로 모방하여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도신앙지를 펴냈다는 점, 시무어 자신이 오순절의 아버지로 자청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 이유를 제시한 후, 그는 그래서 우리 오순절 영광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그 어떤 지상적 아버지(no earthly father)도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오순절적 부흥은 한 사람의 종교적 천재의 마음에서 잉태되지 않았으며, 성령 충만에 방언의 동반에 관한 그것의 독특한 선언조차도 한 집단에 의해 성경적인 것이라고 파악된 것이지 한 개인에 의해 된 것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그는 오순절운동을 성령의 자녀”(a child of the Holy Ghost)라고, 즉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를 성령이라고 규정지었다.

브럼백이 오순절운동의 천상적 기원을 강조한 것은 격한 충돌을 피하려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되는 점에서는 파함을 따르지만, 성화론에서는 더함(William H. Durham)을 따르고, 방언의 성격에 있어서는 파함의 언어적 방언(Xenolalia)도 인정하지만, 시무어의 집회에서 일어나기도 했던 천상적 방언(glossolalia)도 인정한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 세미나리에서 가르치던 브럼백은 어느 한 면을 부각시키고, 그 면을 주도한 한 사람을 오순절 창시자로 삼기를 주저했을 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신적 기원설은 아주사 공동체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파함도 아니고 시무어도 아닌, 즉 인간이 아닌 주님께서 오순절운동을 일으키셨다는 것이다. 바틀맨의 말에게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신적 기원설은 주도적 지도자들 간의 충돌을 겪으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일 것이다.

바틀맨과 브럼백의 특정한 교리와 사역을 주장했던 사람을 기원으로 삼지 않으려는, 그런 평화를 위한 대안적 선택은 성령침례에 방언이 최초로 동반된다는 오순절운동만의 특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브럼백은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역사를 집필하기 20여 년 전인 1947년에 방언에 대한 훌륭한 변증서를 썼다. 그런 브럼백의 노고는 1961년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역사를 기록하며 성령침례에 동반되는 방언 교리를 오순절운동의 주장들 중 하나로 치부하고, 그 교리의 형성을 주도했던 파함의 창조적 업적을 약화시킴으로써 빛이 바랬다.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설정하는 기준은 오순절운동을 다른 운동들로부터 구별시켜주는 성령침례에 방언이 동반된다는 신학적 교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순절운동의 특징이 명확해지고, 그 기원도 명확해지는 것이다.

비록 브럼백이 지적했던 것처럼 사도행전에서 성령침례의 증거를 찾았던 사람들은 그의 학생들이었지만, 그들에게 그런 성경연구를 지시하고 그 연구에 따라 방언이 동반되는 성령침례의 경험을 주도했던 사람은 바로 파함이었던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기독교 2000년 역사 가운데서 성령이 계속 역사하셨지만, 그 동안 성령침례 역사가 활발하지 못했던 원인은 사람들의 성령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인식이었다. 그 파함이 그 올바르지 못한 성령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자, 성령께서 활발하게 역사하기 시작하셨고, 그 모든 과정이 오순절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오순절운동에서 신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인적 요소도 그만큼 중요하다. 지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에 지상적 아버지는 없고 천상적 아버지만 존재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브럼백의 주장과는 달리 오순절운동에게는 천상적 아버지(heavenly father)뿐만 아니라, 지상적 아버지(earthly father)도 존재한다. 오순절운동은 성령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자녀이기도 하다.

성령은 인간 대행자와 함께 역사하신다는 점에서 성령 기원설에만 치우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로벳은 성령 기원설이 성령께서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인간 대행자를 통해 일하신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런 지적만큼은 정확한 것이었다. 물론 성령 기원설은 오순절운동이 영적으로 성령께서 그 시작과 경과를 주도하신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그 신적 기원을 잘 설명하지만, 성령께서는 지상의 대행자를 통해 그렇게 하셨다는 인간적 측면을 약화시킨다.

오순절운동이 신적인 기원만을 갖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오순절 역사(Pentecostal history)의 기록이 불가능하게 된다. 오순절 역사 연구와 기록 문제에 관심이 있는 윌리엄 케이(William Kay)는 물론 오순절 운동에는 방언 등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오순절 역사에 대한 섭리적 관점(the providential view of history)없이는 오순절적 역사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또한 섭리적 관점에만 치우쳐 오순절 운동의 발흥의 자연적 요인들을 무시한다면, 이 또한 오순절 역사 기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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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승 교수는

  B.A. in Theology Southwest University (미국)

   M.Div.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Th.M. 신약학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Ph.D. 조직신학 건신대학원대학교

  현 순복음총회신학교 조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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